42대 국무총리였던 정홍원은 1944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12남매(6남 6녀) 중 열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학자 집안에 집에 머슴이 있을 정도였으니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부산에 살던 한 친척이 머리가 좋은 그를 눈여겨보고 그를 데려가 부산 영도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셋째형이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자 부친이 실망한 나머지 교육시켜 봤자 쓸데없다고 생각해 그를 고향으로 소환했다고 합니다. 12남매의 대가족이라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원하던 경남고에 진학하지 못합니다.
사범학교에 진학해 가사를 돌보는 것으로 부친과 타협을 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그의 첫 발령지는 서울이었다고 합니다. 낮에는 서대문구 홍제동의 인왕초등학교 교사로 돈을 벌고 밤에는 성균관대학교 법과대 야간과정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197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인 김황식 총리와 사법시험(14회)과 사법연수원(4기) 동기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1975년 화재로 아내를 잃었습니다. 재혼한 부인 최옥자와의 사이에 외아들이 있습니다.
정홍원은 대전지방검찰청·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으며,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장을 거쳐 1999년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었습니다. 광주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한편 검사 재직 시절이던 19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과 같은 사건을 처리하여 '특별 수사통'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 시절이던 1991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 해커를 적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홍원은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부장 재직 시 '검찰 낮술 금지'를 실시하는 등 검찰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2003년 정홍원은 법무연수원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대한변협에 의해 삼성 비자금 사건의 특별검사 후보로도 추천되었습니다. 법무연수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에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청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자신의 후배들을 위해서 용퇴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홍원은 새누리당의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며 정치적인 언행을 삼가는 태도를 보여 처신을 깔끔하게 했습니다.
2013년 정홍원은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어 2월 26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임무를 시작했습니다.
2014년 4월 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오전 10시 정부 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지고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안대희 후보자와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후임이 정해지지 않자 2014년 6월 26일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을 발표했습니다. 2015년 2월 17일 이완구가 후임 총리로 정해져 결국 사퇴를 선언한지 296일이 걸려서야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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