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회장 주식 재산 프로필 학력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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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회장 주식 재산 프로필 학력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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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과 제13~19대 7선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정몽준은 제13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제18대 총선에 출마하여 서울 동작구 을에서 당선되며 지역구를 옮겼고, 2014년에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5월 15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후 제6회 지방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되었습니다. 이후 국제축구연맹 명예부회장을 지내며,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직과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이사장을 맡으면서 현대중공업그룹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정몽준 회장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ROTC 후보생이 됩니다. 학군사관후보생 13기로 병역을 이행했습니다.

그후 1982년부터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정몽준은 1988년 13대 총선때 무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으나, 김영삼 정부 당시 초원복집사건 때 불법도청한 범인들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됩니다.​


정몽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후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열풍이 일어났고 노무현은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내 의원들로부터도 배척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었다. 노무현의 낙마를 바라는 의원들이 탈당하여 후보 단일화 추진 협의회(후단협)를 만들고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노무현으로 후보 단일화가 되면 함께 할 수 없다고 발언하였고 정몽준 지지를 하였습니다. 11월 19일 후단협은 정몽준에 대한 공개 지지를 밝혔고 이후 후단협이 해제되자 일부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나머지는 민주당에 복당하게됩니다.

이후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입당하기 위한 김민석의 탈당은 노무현에게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탈당은 노무현에게 악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답보 상태였던 노무현의 지지율은 20%대를 회복하였습니다.

정몽준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합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5선을 거둔 울산 동구를 떠나 서울 동작을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해 정동영 후보에 맞서 승리해 6선 고지에 올랐고, 2008년 7월에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의 양산 재선거 출마로 인한 사퇴로 당대표직을 맡게됩니다.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던 김우중 후임으로 정몽준은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게됩니다. 취임 후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였고 1993년 11월 정몽준은 월드컵 유치 성공을 위하여 FIFA 부회장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표명하였고, 1994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축구연맹 연차총회 중 실시된 아시아지역 FIFA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 됩니다.

2002년 FIFA 월드컵을 만장일치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것으로 확정하였고 정몽준은 2002년 월드컵 한국측 조직위원회 실무부위원장에 선출됩니다.

정몽준은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제50대까지 4회에 걸쳐 회장으로 선출되어 재임하였고, 1994년 12월에는 당시 경기단체장 중 가장 많은 41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정몽준이 아들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과한 지 약 한 달 여 만에 인터넷 언론에서 정몽준 서울시장 새누리당 경선후보의 부인인 김영명의 막내아들 사건 이후에 서울의 한 당협 사무실에서 했던 말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인인 김영명 씨는 동영상에서 "막내가 일을 저지른 거 아시죠? 그 아이가 지금 지난번 대학가는 거 실패하고, 재수생이다. '바른소리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 어린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비난 여론이 시작되었고, 정몽준 경선후보의 이수희 대변인은 논평에, "연로한 한 참석자가 위로 차원의 말을 하자, 막내아들의 잘못을 강조하는 말을 한 것이며, 일부 인터넷 언론에서 '어휴.. 옳은 말 썼드만...'이라고 한 말을 김씨가 한 것처럼 보도해 왜곡 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이후 정몽준도 입장자료를 내고, "제 아내가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 말을 하는 이중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고 발표 하기도 하였습니다. ​



정몽준 프로필
출생일 1951년 10월 17일
출생지 부산

학력
1964년 서울장충국민학교
1967년 중앙중학교
1970년 중앙고등학교
197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졸업
1976년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수료
1978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MBA
1981년 MIT 슬론 스쿨 MBA
1982년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97년 존스홉킨스 SAIS 국제정치학 박사

명예 박사 학위
1998년 명지대학교 명예체육학 박사
1999년 메릴랜드 대학교 명예법학 박사
2000년 뉴욕시립대학교 명예법학 박사
2000년 공주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2002년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 박사
2002년 고신대학교 명예보건학 박사
2011년 전주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2011년 강원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경력사항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
1983년: 대한양궁협회회장
1983년: 울산대학교 이사장
1984년: 실업테니스연맹 회장
1987년: 현대중공업 회장
1988년: 제13대 경상남도 울산 동구 국회의원
1990년: 현대학원 이사장
1990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회장
1992년: 제14대 경상남도 울산동구 국회의원
1993년 1월 ~ 2009년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
1994년 ~ 2011년 1월: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재단 이사
1996년: 제15대 경상남도 울산동구 국회의원
1997년: FIFA 미디어위원장
199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특별초빙교수
1998년: 한국유네스코협회연맹 회장
1998년: 명지대학교 명예박사
1999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겸임교수
1999년: 고려대학교 경역대학 석좌교수
1999년: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재단이사
2000년: 21세기 평화재단 이사
2000년: 제16대 울산광역시 동구 국회의원
2000년: 2002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2001년 ~ : 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재단 이사
2001년 ~ : 아산재단 이사장
2004년 ~ 2008년 5월: 제17대 울산광역시 동구 국회의원
2004년: 동아시아축구연맹 회장
2005년: 제50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2007년 6월 :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2008년 1월 ~ 2009년 9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8년 5월 ~ 2012년 2월: 제18대 서울특별시 동작구을 국회의원
2008년: 제18대 국회 한미협의회 회장
2008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9년 1월 ~ :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2009년 9월 ~ 2010년 6월: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2011년 6월 ~ : 국제축구연맹 명예부회장
2011년 10월 ~ :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
2012년 2월 ~ 2014년 5월: 제19대 서울특별시 동작구을 국회의원
2012년 7월 :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4년: 울산 현대 구단주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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